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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화개장터, 하루를 온전히 맡긴 여행기

by 리핀 블로그 2025. 9. 22.

 

하동 화개장터, 하루를 온전히 맡긴 여행기 관련 사진

장터에 들어선 순간 

아침 일찍 하동 화개장터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 내려가는데,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은 이미 분주했습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방앗간에서 갓 짜낸 참기름 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옆에서는 커다란 솥에서 재첩을 삶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한 번 보고 가요!” 하는 정겨운 목소리가 시장 분위기를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들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걸을수록 눈길은 더 분주해졌습니다. 곶감이 줄지어 걸려 있고, 매실 장아찌 병이 햇살에 반짝이며 놓여 있었습니다. 바구니 가득 담긴 고추, 봉투에 담긴 들깨와 참깨, 묵직한 나물 꾸러미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죠.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장을 보러 나온 현지 주민들의 모습도 보여서 ‘살아 있는 시장’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니라 실제 삶의 무대라는 게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따끈한 재첩국으로 여는 아침

시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파 재첩국집으로 향했습니다. 하동은 섬진강 재첩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꼭 맛보고 싶었습니다. 국그릇을 받자마자 따뜻한 김이 올라왔고,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는 순간 은은한 단맛과 개운한 향이 퍼졌습니다. 국물은 맑고 시원했으며, 작은 재첩살이 알알이 씹혔습니다. 밥 위에 재첩무침을 얹어 비비니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올라와 그릇을 비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옆 테이블의 어르신이 “여기 오면 재첩국은 꼭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백 번 공감됐습니다. 시장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맛으로도 기억을 남겨야 하니까요.

시장 골목에서 만난 작은 풍경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래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색이 바래고 페인트가 벗겨진 간판들 사이로 오랜 세월이 스며 있었습니다. 벽에는 소설 ‘토지’의 구절이 적혀 있고, 흑백사진이 붙어 있어 문학적 배경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앗간 앞에서는 참깨가 맷돌에 갈리는 소리가 둥둥 울렸고, 갓 짜낸 기름에서 나는 고소한 향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한약방 앞에서는 말린 약초와 대추 더미에서 은은한 향이 퍼졌는데, 약사님이 “이건 몸 데울 때 좋아요”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시장 공연과 흥겨운 분위기

정오가 가까워지자 시장 입구 쪽에서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북과 장구 소리가 시장의 소음을 살짝 밀어내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판소리 한 대목이 울려 퍼지자 외국인 관광객들도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으며 감탄했습니다. 잠깐의 공연이었지만 장터 전체가 흥겨워지고, 시장의 활기가 한층 더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인분들도 잠시 일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먹거리 투어 – 파전, 도너츠, 녹차 디저트

공연이 끝난 후에는 다시 먹거리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시장 안쪽 분식집에서 파전과 동동주를 주문했는데, 파전의 노릇한 가장자리를 한 입 베어 물자 파의 단맛과 반죽의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동동주를 곁들이니 소란스러운 시장 풍경이 오히려 배경 음악처럼 느껴졌습니다.

골목을 돌다 보니 도너츠를 막 튀겨내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갓 튀긴 도너츠를 설탕에 굴려 종이에 담아주셨는데, 뜨끈한 김이 오르는 도너츠를 베어 물자 어린 시절 장날에 먹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마지막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쌉싸름한 녹차 맛이 달달했던 도너츠와 파전의 기름기를 싹 잡아주어 상쾌하게 입가심이 됐습니다.

장터에서 챙긴 기념품과 팁

시장에서는 기념품 겸 식재료를 몇 가지 샀습니다. 소포장 녹차, 매실청, 곶감, 그리고 들기름이 대표적입니다. 상인분들이 제품을 설명해주셔서 고르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특히 녹차는 잎 모양과 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집에 와서 우려보니 정말 향이 진하고 깔끔했습니다.

포장은 상인분들이 꼼꼼히 해주셨고, 물건이 많아지면 현장에서 바로 택배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작은 장바구니를 챙겨간 덕분에 손이 자유로워져 구경이 한결 편했고, 혹시 방문하실 분들께도 꼭 추천하고 싶은 팁입니다.

시장 주변에서 이어간 여행

화개장터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쉬워 섬진강 둔치로 내려갔습니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시장에서 묻은 냄새를 싹 씻어내는 기분이었어요. 강물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보니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쌍계사 방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길 양옆으로 펼쳐진 차밭과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짙은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엔 고요한 설경이 이 길을 장식한다고 하니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화개장터에서 보낸 하루는 단순히 시장을 둘러보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상인들의 친절한 말 한마디, 공연에서 울려 퍼진 북소리, 그리고 먹거리와 기념품으로 가득 채운 가방이 모두 추억이 되었습니다.

하동을 여행하신다면 섬진강 드라이브와 함께 화개장터는 꼭 들르시길 추천합니다. 활기찬 시장의 공기, 따뜻한 음식, 사람들의 정겨움이 어우러져 여행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저 역시 다음에 하동에 다시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화개장터부터 찾을 겁니다. 같은 골목에서 같은 재첩국을 다시 먹고, 같은 상인분께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요.